한번 꽂히면 성에 찰 때까지 몰두하는 뚝심
연구실에 앉은 그는 사뭇 불편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가 목이 잘 돌아가지 않았다. 의사가 제 병 못 고친다는 옛 속담 그대로였다. 뻣뻣하게 굳은 자라목을 하고도 그는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는 눈의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먼저 시작한 일을 끝내기 전까지는 도저히 다른 일에 손을 대지 않을 타입같아 보였다.
"직업병이예요, 매일 컴퓨터나 논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요, 연구 성과를 고질적인 목 디스크와 맞교환한 셈이죠."
하 교수는 주변에도 공부를 많이 하는 의사로 소문 나 있다. 한번 꽂히면 성에 찰 때까지 몰두하는 까닭이다. 비교적 짧은 경력에 남다른 연구 실적을 쌓은 데에는 마음먹으면 무조건 목표를 향해 진격하는 그의 뚝심ㅁ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컴퓨터 스크린에는 화면을 가득채운 알 수 없는 텍스트로도 모자라 포스트잇 메모가 빼곡히 붙어있다.
"새로운 기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기억력이라는게 한계가 있는 거니까 체크해야 할 사항들을 그때그때 이렇게 메모해 붙여두면 나중에 도움이 돼요, 이걸 통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중요한 사항을 잊어버릴 염려도 없죠."
이만한 천직이 또 있을까? 뻣뻣한 목은 좀 불편해도 새로운 기기 연구만큼은 참 재미있다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연구원이든 의사든 하얀 가운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학창 시절 유난히 수학을 잘했던 그의 꿈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되는 것이었다. 사진만으로 병을 진단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
하지만 인턴실습을 하면서 꿈은 바뀌었다.
"사진만 판독해서는 진단, 치료에 한계가 있음을 느꼈어요. 또 응급실을 찾을 정도로 시급을 다투는 환자들에게는 외과가 가장 큰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고요."
약만 처방하는 내과보다 좀 더 입체적인 역할을 원했던 그는 결국 외과행을 택했다.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그와 친했던 동기들도 하나같이 외과를 택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역사상 최다 외과 전문의를 많이 배출한 연차였어요. 보통 외과라 하면 험해서 꺼리는데 그 중에 여학생도 있었어요. 지금도 만나면 그때를 떠올리며 신기해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전형적이면서 전형적이지 않은 의사
외과 전공 '6총사'중 하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은 전문의로 개업을 하면서 모두 모교를 떠났다. 홀로 남은 이유에 대해 하 교수는 '딱히 개업 계획이 없어서'라고 담백하게 말한다. 그럴 듯한 미사여구나 형용을 고를 줄 모르는 그는 군더더기가 없어 실수나 오차도 적은 사람이다. 이런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딱딱하다'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목석'이라는 오랜 별명은 알고보면 그가 대학교 응원 동아리에 몸 담았던 시절 얻은 것이다. 너무나 전형적인 동시에, 전형을 깨는 무언가 비전형적인 '한 방'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다.
"목 디스크는 예전에 있던 대형병원에서 임상연구를 하면서 얻었어요. 데이터 수집을 위해 하루 꼬박 12시간 컴퓨터 스크린만 노려본 결과조, 하하, 거짓말 같지만 새벽 여섯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컴퓨터만 봤거든요."
하지만 '소아외과'과목이 진료과목에 추가되면서 그의 일상은 더욱 바빠졌다. 수술과 직계된 과목이라 그런지 외과 공부는 파면 팔수록 깊어지는 우물과도 같았다.
이왕 의사가 된 거 좀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조그마한 보탬이나마 되고 싶었을 뿐이라는 그의 남다른 열정은 2006년 '대한위암학회 우수포스터상', 2007년 '대한위암학회 우수포스터상', 2010년 '대한암학회 로슈학술상' 등으로 이미 인정받은 바 있다.
최소침습 수술로 스몰 인시전 그레이트 서전 시대 열다
하 교수는 복강경과 다빈치 로봇을 이용한 최소 침습 수술로 위암 치료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전에는 빅 인시전 그레이트 서전이라 해서 수술 부위가 크면 휼륭한 외과의라 했어요, 지금은 정반대로 수술 부위가 작으면 작을 수록 유능한 의사예요, 그만큼 정교한 수술이 관건이 된거죠."
다빈치 로봇은 손이 닿지 않는 부위까지 침투해 필요한 시술을 해주는 로봇이다. 하 교수는 이를 이용한 위암수술 및 인화세포 위암의 치료방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및 논문발표 등 그간의 독창적인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세계 3대 인명사전의 하나인 미국 마르퀴즈 후즈후 사에서 발행하는 <Who's Who in Medicine and Healthcare> 2011년도 판에 등재되는 영광을 안았다.
1년간의 아일랜드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해인 2014년에는 조기위암 복강경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위암을 절제하면서 복강내 내장지방을 같이 제거하면 심혈관 질환 발생률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다시 한번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랫동안 공부할 게 너무 많아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어요. 소아외과 과목이 추가되면서 아이들에 관한 공부를 해야 했는데 그러다 문득 '아차, 나도 아이들의 아빠였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새삼 아빠는 공부에만 정신이 팔여있는데 그 와중에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이들이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아내에게도 미안했고요."
그는 환자를 돌보는 마음으로 자신과 가족을 돌보겠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시작하고 절주, 금연을 실천했다. 그리고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을 늘렸다.
환자들의 불안과 고통도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의 단절과 고립을 통해 더 커지리란 생각에 환자들과의 대화 시간도 자주 늦는 현이다. 하 교수에게는 언제부터인지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환자 상담 중에도 환자가 하는 말이라면 일단 메모부터 하고 본다. 흘려 듣기 쉬운 사소한 내용가지 세세하게 기억하는 그에게 환자들이 감동하는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건강한 삶을 위하여
예전에는 역할이 입체적일 것 같아 외과의란 직업에 '매력'을 느꼈다면 지금은 환자들의 삶의 질을 바꾸어 놓기 때문에 '사명'을 느낀다.
"630g밖에 안 되는 태어난 지 24주 쯤 된 미숙아를 수술한 적이 있어요. '괴사성 장염'이었죠. 조금만 늦었어도 죽을 뻔한 아이를 살려 놓고는 제가 울었어요. 그 아이가 지금껏 수술한 최연소 환자였을 겁니다. 그런가 하면 복막염으로 고통 받언 93세 할머님을 수술한 적도 있어요. 덕분에 더 오래 살게 되셨다며 고마워 하셨죠. 나이가 따로 없어요. 건강한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한겁니다."
하 교수는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환자가 "선생님, 고맙습니다."할 때 더할 나위 없이 큰 감사와 보람을 느낀다. 그의 손길로 건강을 되찾은 환자가 감사의 말 한 마디를 건네는 그 순간은 이 직업이 아니었으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아주 특별한 순간이다.
예전에는 불가능해 보이기만 했던 수술들이 의료기술의 발달, 혁신으로 지금은 상당부분 가능한 수술이 되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 그 특별한 연금술적 매력이 하 교수로 하여금 불편한 목을 쑥 빼놓고 잠을 줄여 공부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장기적으로는 소아외과 분야의 후배 양성과 더불어 위암, 고도비만 등 상부위장관 수술을 전문화시켜 그 분야로 인정받겠다는 목표를 향해 오늘도 성큼성큼 나아가는 사나이, 누가 뭐래도 그는 앞으로 한 일보다 할 일이 더 많을 것 같은'진격의 사나이'다.
한양대병원 하태경 교수의 비만대사수술... : 네이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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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병원 매거진에서
한번 꽂히면 성에 찰 때까지 몰두하는 뚝심 연구실에 앉은 그는 사뭇 불편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가 목이 잘 돌아가지 않았다. 의사가 제 병 못 고친다는 옛 속담 그대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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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병원 매거진에서 발행된 기사입니다. 2015.05.01 한양대학교의료원 대외협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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